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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와트 천년의 비밀

앙코르와트 (2019)

앙코르와트 혜자

수백년간 정글에 묻혔다가 드러난 앙코르와트

10/10

서쪽회랑

Rating:
4/5

마하바라타 회랑

Rating:
4/5

앙코르와트 규모

앙코르 와트는 12세기 크메르 제국의 황제 수리야바르만 2세에 의해 약 30년에 걸쳐 축조되었다. 사원의 정문이 서쪽을 향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것은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 세계가 있다는 힌두교 교리에 의한 것으로, 앙코르 와트가 왕의 사후세계를 위하여 지어진 사원임을 짐작할 수 있다.[2] 앙코르 와트는 크게 산처럼 생긴 탑들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때 이 탑들은 불교 신들의 고향인 수미산을 상징한다. 앙코르 와트는 길이 5km가 넘는 깊은 해자에 둘러싸여 있으며, 외벽은 그 길이가 3.6km에 달한다. 외벽 안쪽에는 3개의 회랑들이 벽을 이루어 지어져 있고, 사원 정중앙에는 4개의 탑이 1개의 중앙 탑을 중심으로 세워져 있다. 앙코르 와트는 그 거대한 규모뿐만 아니라 지극히 정교한 건축 기술과 벽화들로도 매우 유명하며, 특히 여백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히 새겨진 부조들로 잘 알려져 있다.

앙코르(Angkor)는 산스크리트어 나가라에서 파생된 도읍이라는 의미의 노코르(Nokor)의 방언이고, 와트(Wat)는 크메르어로 사원이라는 뜻이니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읍’이라는 뜻이된다. ‘사원의 도읍’이라는 의미인 앙코르 와트라는 이름은 16세기 이후부터 사용되었다.
(발췌: 위키백과)

앙코르와트 역사

캄보디아의 구전 신화에 의하면, 힌두교의 신 인드라가 그의 아들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궁전을 지으라고 지시했고, 이때 앙코르 와트가 세워졌다고 한다. 또한 13세기의 중국 여행가 주달관에 의하면, 당시 사람들은 앙코르 와트가 신성한 힘에 의하여 하룻밤 사이에 지어졌다고 믿었다고 한다.

사원 설계와 건축 작업은 수리야바르만 2세(재위 1113~1150년)의 재위기였던 12세기에 시작되었다. 앙코르 와트는 왕실용 사원이자 수도의 핵심 사원으로 지어졌으며, 비슈누에게 봉헌되었다. 앙코르 와트에서 창립 연대나 건축 시기를 알려주는 유물이 단 하나도 출토되지 않았기에, 앙코르 와트의 본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다. 다만 비슈누에게 바쳐진 신전이었기에 ‘바라 비슈누-록(Varah Vishnu-Lok)’이라고 불렸을 가능성은 있다. 앙코르 와트는 수르야바르만 2세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사가 중단되었기에, 현재 앙코르 와트의 일부 부분에는 장식 작업이 미완으로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수리야바르만 2세의 유명은 ‘파라마비슈누로카’인데, 직해하면 ‘비슈누의 세계로 떠난 왕’이라는 뜻이다. 이는 수리야바르만 2세을 신격화하고 그의 업적을 치켜세우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위키백과)

건축양식

앙코르 와트는 크메르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크메르 건축은 ‘앙코르 와트 양식’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12세기 앙코르의 건축가들은 라테라이트나 벽돌 대신 사암을 주로 활용하여 건물들을 짓는 데에 익숙해졌으며, 이 때문에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대부분의 부분들은 거의 사암으로 지어져 있다. 그리고 외벽이나 잘 보이지 않는 부분들에는 사암 대신 라테라이트를 주로 사용하였다. 이 석재들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썼던 접착 물질들은 아직도 알려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천연 수지나 수산화 칼슘 재질의 점착제가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앙코르 와트는 그 무엇보다 조화를 강조하여 지어져 있다. 20세기 중반의 평론가 마우리스 글레이스는, ‘앙코르 와트는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재료들과 정확한 비율의 정제된 아름다움으로 인한 고전적인 완벽성을 띠고 있다. 앙코르 와트의 건축 양식은 힘의 건축, 통합적인 건축이다.’라고 적었다. 건축학적으로 앙코르 양식은 연꽃 봉우리처럼 생긴 끝이 뾰족한 탑, 통로를 넓히기 위해 지은 반-회랑, 사원의 중심 축을 이루는 십자회랑 등을 주 특징으로 지닌다. 주된 장식 주제는 힌두교의 무희이자 여신들인 압사라, 부조, 힌두교 신들이나 영웅들이 있다. 앙코르 와트에 있는 조각상들은 동시대에 지어진 사원들에 비하여 훨씬 보수적이라는 평을 듣는데, 이는 다른 사원들에 비해 조각들의 자세가 훨씬 딱딱하고 표정도 절제되어 있으며 우아미가 덜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앙코르 와트는 20세기 들어 유물 수집가들이 탑의 스투코 장식들, 부조에 새겨진 인물상들, 목재로 지어진 문들을 대부분 떼어가버려 지어졌을 당시의 영광을 바로 알아보기에는 약간 무리가 있다.
(위키백과)

앙코르와트

수리요바르만2세(1113~1150)

앙코르와트의 기원과 역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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