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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라의 큰 꿈, 그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들

캄보디아 푸난 테초 운하 프로젝트를 통해 본 미중 경쟁 시대의 생존법

최근 캄보디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보면서, 나는 30여 년 전 한국의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1990년대 초, 우리는 소련 붕괴 후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도 미국과의 동맹을 유지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경제적으로는 일본 기술에 의존하면서도 미국 시장 접근을 위해 눈치를 봐야 했고, 한편으로는 막 개방되기 시작한 중국 시장의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1992년 한중 수교 당시의 상황이다. 대만과의 관계를 정리해야 했고, 미국은 우려를 표했으며, 일본은 견제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았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새로운 시장과 파트너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캄보디아가 중국의 자금에 의존하면서도 미국의 압박을 받는 상황과 정말 닮아 있다.

캄보디아가 17억 달러를 들여 추진하는 푸난 테초 운하 프로젝트를 보면, 이 나라의 절박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180km의 운하를 통해 메콩강과 태국만을 연결하겠다는 이 계획은, 단순한 토목공사가 아니라 경제적 독립에 대한 간절한 열망의 산물이다.

푸난의 기억: 1500년 전 해상 강국의 꿈

이 운하의 이름 자체가 흥미롭다. ‘푸난 테초’라는 명칭은 1세기부터 6세기까지 존재했던 고대 푸난 왕국에서 따온 것이다. 당시 푸난은 현재의 캄보디아 남부와 베트남 남부 메콩 삼각주, 그리고 태국만 연안을 아우르는 해상 무역의 강자였다.

중국의 고대 문헌인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양서』에는 푸난이 인도와 중국을 잇는 중계 무역의 허브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특히 푸난의 중심지였던 오케오(Oc Eo, 현재 베트남 안장성 일대)에서 발굴된 로마 유리, 인도 보석, 중국 동전들이 이를 증명한다. 1500년 전에도 이들은 이미 물길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던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시기는 우리나라의 삼국시대와 겹친다. 고구려가 광개토왕(391413년)과 장수왕(413491년) 치세에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장악하고, 백제가 중국 남조 및 일본과 해상 교류를 활발히 하며, 신라가 지증왕(500~514년) 시기 중앙집권 체제를 구축하던 바로 그 시절이다.

푸난이 메콩강 하구의 복잡한 수로를 이용해 해상 무역을 장악했던 것처럼, 우리 조상들도 한강과 대동강, 낙동강을 이용해 각자의 세력권을 구축하고 있었다. 다만 푸난은 동남아의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더 국제적인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앙코르 제국 시대에 이르러서는 더욱 정교한 운하와 관개 시스템을 완성했다. 앙코르 와트 주변의 거대한 인공 저수지와 운하망은 지금 봐도 경이로울 정도다. 이런 수리 기술의 전통이 있기에,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운하 건설이 그리 낯선 일이 아닐 것이다.

지금 캄보디아 수출입 물류의 33% 이상이 베트남 항구를 거쳐야 한다. 이게 얼마나 답답한 일인지는, 1980년대까지 우리 수출품 상당 부분이 일본 상사들을 통해서만 해외로 나갈 수 있었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우리는 독자적인 해외 마케팅 네트워크가 부족해서 일본 종합상사들의 유통망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마다 느꼈던 그 답답함과 절망감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훈 마넷 총리가 이 운하를 “캄보디아가 숨 쉴 코를 갖게 하는 역사적 사업”이라고 표현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이다. 물론 그가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라는 점에서, 서구적 사고방식과 현실 정치의 균형감각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계산과 미국의 딜레마

중국도로교량공사(CRBC)가 이 프로젝트에 BOT 방식으로 참여하면서 49% 지분을 가져가고, 캄보디아 기업이 51%를 갖는 구조인데, 실질적으로는 40-50년간 운영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겉보기에는 캄보디아가 주도하는 것 같지만, 장기 운영권을 통해 실질적 영향력을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전형적인 중국식 경제 외교의 패턴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운하의 종착점인 켑이 중국이 재건한 리암 해군기지에서 100km 이내에 있다는 점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미국의 대응은 예상했던 대로 직접적이고 강경하다. 트럼프 행정부가 캄보디아에 49%라는 살인적인 관세를 때린 것은, 단순히 무역 불균형 때문만은 아니다. 캄보디아 의류 공장의 90%가 중국 소유라는 점에서, 이는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우회 타격이다.

소국의 생존 전략: 줄타기의 예술

캄보디아 인민당 대변인이 “소국으로서 살아남고 싶다”고 호소한 말이 가슴에 와 닿는다. 이것이 바로 소국의 현실이다.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때, 소국은 선택의 여지가 많지 않다.

하지만 캄보디아가 취하고 있는 전략을 보면, 나름의 지혜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자금에 의존하면서도 MRC(메콩강위원회)에 프로젝트를 통보하고, 환경 영향에 대한 우려에도 일정 부분 응답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완전히 중국 편에 서지도, 그렇다고 미국의 압박에 굴복하지도 않는 것이다.

한국이 배워야 할 교훈들

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면서, 우리 한국이 배워야 할 점들이 많다고 생각한다.

첫째, 경제적 자립의 중요성이다. 캄보디아가 베트남 항구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것처럼, 우리도 특정 국가에 대한 과도한 경제적 의존은 피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나 배터리 같은 핵심 산업에서 공급망 다변화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둘째, 균형 외교의 섬세함이다. 캄보디아보다 훨씬 나은 위치에 있는 우리도, 미중 사이에서의 균형잡기는 쉽지 않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더 정교하고 다층적인 외교 전략이 필요하다.

셋째, 소프트 파워의 활용이다. 훈 마넷이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라는 것이 미국과의 협상에서 하나의 자산이 되는 것처럼, 우리의 K-컬처나 교육 경험도 외교적 자산으로 활용할 수 있다.

환경 문제: 개발과 보존의 딜레마

베트남이 운하 건설로 인한 메콩강 생태계 파괴를 우려하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메콩 삼각주는 베트남 쌀 생산의 50%를 담당하는 곳이다. 캄보디아는 “지류를 활용하므로 영향이 미미하다”고 주장하지만, 강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MRC와 같은 다자 협력 기구의 역할이다. 한중일 협력에서도 환경 문제를 선제적으로 다루고, 갈등을 예방하는 메커니즘을 만들어야 한다.

마무리하며: 작은 나라의 큰 교훈

캄보디아의 푸난 테초 운하 프로젝트는 단순한 인프라 건설이 아니다. 이것은 한 나라가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필사적인 노력이다.

고대 푸난 왕국의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그들의 꿈이 현실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작은 나라도 포기하지 않으면 길은 있다는 것이다.

우리 한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캄보디아보다 훨씬 나은 조건에 있지만, 방심해서는 안 된다. 미중 경쟁이 격화되는 이 시대에, 우리만의 생존 전략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 나가야 한다.

캄보디아의 도전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깨닫는다. 국제정치에서는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살아남는 자만이 미래를 쓸 수 있다는 것을.

손원혁 Today Cambodia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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